11/1일은 우리 회사의 창립기념일이다.
예전회사에서는 창립기념일이면 수건한장이라도 돌렸었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전날 누가 "내일 출근하는 날이 아니다"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깜박 잊고 출근할 수도 있지... 물론 나처럼 노는날 챙기는 사람이야 그럴ㄹ 일이 없겠지만.
단풍구경이 너무 가고 싶었다.
매년 랄라아빠나 나나 사람많은 곳은 질색이라서 제대로 단풍구경 한번 가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랄라가 어느정도 커서 나도 랄라를 데리고 여행하는 것이 부담이 없다. 지난번 일본 여행을 계기로 둘만의 여행에 자신감도 생겼겠다, 또 평일에 쉬는 날도 있겠다 고민하다가 남이섬의 남이아일랜드 호텔에 예약을 했다.
친정엄마도 같이 가려고.. 남이아일랜드 호텔은 평일에 1박이 45000원이다.
월요일 퇴근을 하자마자 수원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랄라와 친정엄마는 따로 와서 터미널에서 만나자고 해 놓았다. 미리가서 가평까지 가는 버스표를 끊고 보니 대합실에 랄라와 할머니가 벌써 와 계시다.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와서 근처 용우동에 가서 우동과 돌솥밥을 시켜 먹고 출발했다. 8시경에 가평에 도착하고, 가평에서 선착장까지 택시를 타니 4천원가량이 나온다. 거기에서 다시 남이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랄라는 배를 탄다고 좋아하더니 막상 배를 타자 '무서워~ 무서워~" 한다. 그러나 그것도 10분이 되지 않아 섬에 도착하자 금새 얼굴이 환해진다.
섬이 도착하니 평일, 밤이어서 그런지 배를 타고 온 사람은 우리와 다른 일행 두팀뿐이다. 호텔과 선착장은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캄캄한 섬안을, 나즈막한 가로등에 의지해서 춥다는 랄라를 등에 업고 걸어갔다. 15분쯤 걸어가니 호텔이 보인다.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받아 들어가 보니 온돌방은 자그마한 한데 욕실은 무진장 크다.
냉장고에서 랄라는 이것저것 꺼내 먹어본다 하더니 하나씩만 먹고 안먹는다. --;;
랄라는 방안에 들어서자 "여기는 누구집이세요?" 하고 묻는다.
"호텔이야." 라고 대답했더니 "호테리 집이야?" 하고 묻는다. ㅋㅋㅋㅋ
월요일밤은 그렇게 잠을 자고 다음날 7시쯤 일어났다. 문을 열고 보니 밤에는 몰랐던 창밖 풍경이 너무 예쁘다.
작은 분수가 나오는 정원과 단풍이 멋들어지게 들은 나무들이 창 한 가득 펼쳐져 있다. 나도 모르게 우와~ 소리가 나온다.
아침을 먹기전에 랄라와 옷을 입고, 새벽 산책을 나섰다.
사람도 없고, 한적하다.
천천히 산책하는데 옆으로 청설모가 지나간다.
랄라가 좋아하던 분수를 보러 호텔의 뒤편 산책로로 돌아갔다.
랄라가 바닥에서 올라오는 작은 분수를 보더니 '애기분수'라고 명명한다.
호텔의 앞쪽으로 돌아나오니 멀리 타조농장이 보인다.
타조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토끼 두어마리가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있다.
랄라가 토끼를 잡아보겠다고 뛰어가봤지만 토끼는 저멀리로 도망가 버린다.
조금 걷더니 춥댄다.
손을 주머니에 넣어 했더니 들고 나왔던 돗자리는 나에게 주고 주머니에 콕~찔러 놓고 걸어다닌다..
그러다 매점근처에서 음료수 냉장고를 보더니 저걸 사달라고 가 조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밤에 다 들여 놓은 것인지 냉장고가 비어 있다..
엄마, 없어요~ 없어요~
랄라가 보고 좋아하던 분수대다..
여기로 가자 했더니 물 튀겨서 무섭다고 안간다는 것을 간신히 델고 왔다. 짜슥.. 겁은 많아 가지고..
뒤편 산책로로 한바퀴 돌다보니 한 아저씨가 카메라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
랄라가 "엄마, 코나왔어~" 하면서 닦아 달라는데 휴지가 없다. --;
내가 당황해 하니 그 아저씨가 휴지를 꺼내 주길래 받아서 코를 닦아주고 나니 랄라가 묻는다.
"엄마, 이거는 누가 줬어요?"
"아저씨가 줬지, 고맙습니다 해야지."
그러자 랄라가 아저씨에게 가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한다.
아저씨는 아니, 넌 무슨 목소리가 그렇게 새가 짖는 것 같냐? 하며 웃는다..
방안으로 돌아와 할머니와 함께 호텔 식당으로 가서 아침밥을 먹고, 간단히 짐을 챙겨 본격적으로 섬 구경을 나섰다.
호텔에서 조금 걸어나오니 멋진 은행나무길이 보인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이 사진찍으러 온 사람들이다..
사진찍는 사람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랄라와 엄마는 옆쪽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사진을 찍던 아저씨가 랄라를 보더니"꼬마야, 너 이리와봐~" 하고 부른다.
그러자 랄라가 "네에~~~" 하더니 달려가는게 아닌가. --;;
"너, 저기로 좀 가서 서봐" 라고 말하니 바로 은행나무 옆으로 가서 선다.
"조금만 더 뒤로 가봐~" 하니 주춤 주춤 뒤로 가서 포즈를 잡아준다. 허걱..--;;
"야! 너 엄마가 서있으라고 할때는 맨날 도망다녔잖아!!"
랄라를 세워두고 아저씨와 엄마는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나중에 아저씨가 사진을 보여주며 "애가 얼굴이 참 밝네요" 한다. 친정엄마는 "아저씨한테 고맙습니다 해야지" 하기에 "고맙긴.. 모델료를 받아야지." 하고 웃으며 말했더니 아저씨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ㅋㅋㅋ
혹시 어디 SLR이나 그런 곳에서 파란 모자를 쓴 꼬마아이를 보시게 되면 신고 좀 해주시라..
섬은 자그마 한데 군데 군데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길이다.
저길을 걸어가보고 싶었지만 여기도 사진 찍는 사람들이 몰려 있어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준상이와 누구더라??겨울연가는 보지 않아서리..
그 사이에 낀 랄라다..
안데르센 홀 쪽으로 가니 나무로 된 조각품과 놀이터가 있다.
나무로된 놀이터는 보기에 조금 위험해 보였다.
나무표면이 거칠어서 가시에 찔리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랄라는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엉성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게 놀거리가 꽤 많았다.
랄라가 한참 놀이터에서 노는 사이 할머니는 은행나무 밑에서 따뜻한 햇볕을 쐬며 기다리시고..
한참 놀다가 할머니에게 같더니 건너편으로 관람 열차가 한대 지나간다.
호준이도 기차 타고 싶어요~~
한참을 조르더니 갑자기 자겠다고 돗자리에 드러 눕는다.
이거 완전히 노숙자다..^^;;
또 걸었다.
가다가 카페테리아에서 따뜻한 커피나 살까 했더니 랄라가 좋아서 흐흐~ 흐흐~ 하고 웃는다.
랄라는 커피를 무진장 먹고 싶어하는데 엄마가 주지 않으니 커피 얘기만 들어도 흐흐~ 하는 실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친정엄마도 의사 샘에게서 커피 금지령을 받은 터라 따뜻한 핫쵸코를 샀다.
랄라가 먹어보더니 맛있다~ 한다. 그러더니 이게 뭘까? 하고 물으니 "초콜렛이야~" 한다. 허걱..
이녀석 맛은 기막히게도 알아 맞히네..
섬안이 울긋 불긋 하니 온통 빛깔의 잔치다..
저렇게 넓은 잔디 광장도 있다.
12시가 가까와지자 배가 들어올때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들어온다.
유치원 아이들도 소풍을 왔는가 보다. 랄라가 동그랗게 벗어놓은 짐들 사이에서 훌라우프를 보더니 가지고 놀고 싶어한다.
조금 놀다가 자리에 두고 나왔다..
12시에 체크아웃을 해야 하므로 랄라와 할머니는 잔디광장에서 기다리라 하고, 나는 호텔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기자전거를 한대 대여했다.
전기로 가는 거라서 페달을 밟을 필요도 없고 30분이 5천원인데 뒤편에는 랄라를 태울 수 있는 의자가 있다. 대여소에서 짐을 대신 보관해 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잔디광장으로 가니 랄라가 태워달랜다.
랄라를 태우고 섬바깥쪽으로 강변으로 난 산책로를 달렸다. 경치도 좋고, 날도 좋고, 너무 좋다..
랄라는 뒤에서 재밌다~ 재밌다~ 하고 외친다.
그러다가 "할머니는 숲 속에 두고 갈라고?" 하고 묻는다.
아니, 숲속에 두고 간다는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걸까??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돌다가 다시 대여소 근처로 할머니와 함께 돌아와서 짐을 찾고, 섬향기라는 음식점에 가서 유명하다 하는 닭갈비를 시켰다. 닭갈비 2인분 + 밥 두공기 + 된장찌게가 2만원이다.
음식점 앞에는 또 작은 연못이 있는데 랄라는 거기서 노느라 정신이 없다.
나무 통사이로 내려오는 물을 보더니 랄라가 하는 말..
"엄마! 물이 미끄럼 타~~~"
도대체 밥은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랄라를 두고 일단 친정엄마와 둘이서 밥을 먹는다.
멀리 랄라가 노는 모습이 보이고,먹다보니 랄라가 보이지 않는다?
얼른 연못으로 가봤더니 허걱.. 이녀석!
글쎄 연못에 들어갔다가 막 빠져 나오는 참이다.
이미 운동화를 신은채로 들어갔다 와서 바지까지 홀라당 젖어 버린게 아닌가.
그러면서도 뭐가 재밌는지 나를 보면서 실실 웃고 있다.
녀석을 데리고 와서 일단 바지를 갈아입히고, 새 양말도 신기고 했는데 운동화는 어쩔 수 가 없다.
그냥 양말만 신은채로 돌아다니고..
밥도 안먹는다는 것을 "너 안먹으면 숲속에 두고 갈테야~!"하고 으름장을 주었더니 열심히 받아 먹는다.
신발을 버린탓에 업고 다닐 수밖에 없없다. --;;
뭐 어차피 이제 섬을 나올 시간인지라 랄라가 그렇게도 타고 싶어하던 관람열차를 타고 선착장으로 나왔다.
그러자 랄라가 엄마를 보더니 "엄마, 기차가 타고 싶었었어~"
다시 배를 타고 나오면서 "어 일부러 물에 들어갔지!"하고 물었더니 "응! "하고 대답한다. --;;;
선착장에서 터미널까지 가는 택시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뒤에 한 부부가 오더니 같이 타고 반반씩 내자한다.
좋지.. 그래서 같이 타고 왔는데 오는 택시비는 3천원이 나왔다.
버스를 타자마자 랄라는 잠이 들고..
수원에 다와서 깨서는 배가 아프다고 한다. 그러다가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안에서는 또 좋아서 방방뛴다.
"너 아까 배아프다고 한거 거짓말이지? 너 안아팠지?"
"응, 안아팠어~"
이녀석..이젠 엄마를 가지고 놀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자 랄라는 더 신이나서 방방 뛰어다니고..
아빠가 돌아오니 아빠를 눕혀 놓고, 아빠를 지게차로 삼아 놀이를 시작한다.
뭐가 그리도 좋은 것인지.
어쨌든 가을 단풍구경은 정말 잘하고 돌아왔다.
랄라에게도 좋은 하루가 되었던 것 같다.
랄라가 집으로 돌아오자 또 묻는다..
"엄마, 많이 자고 또 어디 갈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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