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4. 12:11

[ 萬里長城 ]- BC 7C경 진시황제 때 건립 ( 12,700里 . 6,000키로미터)

처음 장성을 쌓기시작한 것은 BC7세기 경으로, 당시 북방 유목민의 침입과
약탈에 대하여 백성들의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기위하여 건립.

만리장성

(관광시간 :1시간):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 총길이 6천여㎞에 달하는 성벽이다. 팔달령 장성은 명나라때 개수된 성벽으로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수많은 인부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진 축조물이다.

기원전 3세기경 진시황이 북방의 흉노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세웠다는 만리장성. 전 세계인들 중 만리장성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달에서도 만리장성이 보인다'는 말은 낭설일 가능성이 많지만 만리장성이 그만큼 웅장한 건축물이라는 것을 표현해주고 있다.
현존하고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중국의 만리장성.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하나의 역사물 만리장성.이곳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의 거대한 무덤이 되기도 한 만리장성. 우리가 이런 만리장성의 위대함을 경탄해 하는 것은 단지 눈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아닌 이곳에 뿌려진 중국인들의 피와 땀의 거룩함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중국의 성인이 되는 남자들은 반드시 이곳 만리장성에 올라봐야 한다고 한다. 벽돌 하나 하나를 쌓아 올리면서 평생을 받쳐야 했던, 그리고 그들을 평생 기다리면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던 옛 중국인들의 한이 서려있는 만리장성이 주는 교훈과 숭고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산맥을 따라 이어져 있는 역사의 줄기

만리장성은 춘추전국시대부터 나라별로 부분적으로 쌓았던 것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이 공사는 10년 동안 이어졌으며 30만의 군사와 수백만의 농민들이 징발되어야 했다. 그 후에도 역대 왕조들이 개수하였고 명나라 때 와서는 200여 년 동안 18차례나 수축되어 지금의 만리장성이 완성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팔당령', '모전욕', '사마대'가 개방되어 있다. 만리장성의 길이는 6,700km에 달하고 이것을 쭉 늘어뜨리면 747비행기로 7시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단연 '팔당령'인데 이곳은 길이 잘 닦여져 있고 복원상태도 매우 잘 되어있다. 그래서 '사통팔달'이란 말도 이곳 '팔당령'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반면 장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모전욕'과 '사마대'도 점점 알려지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가장 경탄해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강줄기처럼 이어진 장성의 웅장함이다.
통로의 넓이는 5.7∼6.5m, 높이는 8.5m로 되어있어 예전에 말 몇 필이 나란히 이동하기에 편리하게 제작되었고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대가 110m마다 설치되어 있다. 또 벽돌 하나하나를 찹쌀풀로 이겨 쌓았기 때문에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견고한 만리장성도 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하고 있다. 생태환경의 악화와 자연풍화, 사막화의 진행, 인공적인 파괴 등의 원인으로 3분의 2 가량이 완전히 파괴되었거나 궤멸 중에 있다고 한다. 또 문화혁명 때는 농부들이 집을 수리하고 가축우리를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의 돌을 훔쳐가 많이 훼손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의 후손들은 만리장성을 역사책에서만 존재하는 유적으로 보게될 지도 모른다.
세계인들은 이런 만리장성을 보고자 한해에도 수백만이 몰려든다. 지금은 중국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원래의 목적에는 그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을 착취하고 고통을 줌으로써 국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하룻밤만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만리장성이 유명한 만큼 이곳의 전해져오는 일화들도 유명하다. 흔히 우리가 속담처럼 '하룻밤만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중국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 어떤 사람이 산골 마을을 지나다 홀로 사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있었지만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노동자로 강제로 징용되어 혼자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여자는 하룻밤을 받치는 대신 이 남자에게 부탁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편지를 남편에게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남자는 그 여자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감독관이 그를 잡아 성 쌓는 일을 하게 하고 남편을 여자에게 돌려보내 주었다>
또 전설적인 이야기로 '맹강녀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제나라 여인 이였던 맹강녀는 남편이 역시 만리장성의 인부로 징용을 나가게 되자 걱정과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남편이 자주 보이자 보따리를 안고 몇 달을 걸쳐 만리장성에 도착한다. 하지만 남편은 어디에도 없고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너무나 원통한 맹강녀는 몇 날 며칠을 통곡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성벽이 무너지자 그곳에서 남편이 시신이 나왔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맹강녀는 남편의 시신을 안고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지금 실제로 중국 하북성 산해관 쪽에 그녀의 묘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옆에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멀리 만리장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리장성으로 인해 많은 고통과 슬픔의 나날들을 보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찍이 당태종은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은 물리적인 방어보다 사람의 지혜로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자 지어진 만리장성이지만 전쟁을 치른 것보다 더 큰 고통과 짐을 국민들에게 지어준 결과만 낳은 것이다.
만리장성은 위대한 건축물인 동시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역사의 스승인 것이다.

-- 출처 네이버 지식 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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