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키울까..

랄라 서당에 다녀오다.

_룰루랄라_ 2007. 12. 10. 08:19

지난 금요일, 랄라의 한자 학습을 두고 고민을 한참을 하다가 혹시나 서당이 있을까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마침 영통에, 집 근처에 서당이 한군데 나오는게 아닌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받는다고 하던데 랄라아빠가 한번 전화를 해 보았더니 "어디 한번 싹을 봅시다" 하며 데리고 와보라 하더란다.

금요일 저녁은 랄라 할아버지댁에서 증조할머니의 제사가 있는 날이라 상주로 가야 하는데 가기 전에 잠시 서당에 들러 보았다.

들른 시간이 저녁 8시가 조금 안되었는데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한참 수업중이었다.

소학을 배우는 중이던데 랄라가 가서 책을 열심히 들여다 본다.

여자아이의 지도를 끝내고 교실로 가서 큰소리로 읽으라도 들여보내고, 잠시 시간을 더 달라 하시더니 이번엔 전화로 지도를 하신다.

10여분정도 전화통화를 하시고 나서야 랄라를 보자 하신다.

선생님께 이런저런, 랄라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게 된 계기를 말씀드렸다.

혼자서 한자를 습득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학습지로는 성이 안찰 듯 하고, 이대로 놔둬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고..

요즘 온통 한자 얘기 뿐이고, 여기 저기 한자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데 주변에 받아줄 말한 사람이 없다...

뭐 그런 얘기였다.

선생님은 40대의 여자분이셨는데 꽤 의욕적이신 분이셨다.

이제까지 두어명정도 여섯살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이 계셨는데 아직 이르다고 돌려 보냈단다.

선생님말씀이 급수 한자는 의미 없다고, 한글자 한글자의 뜻만 아는게 중요한게 아니라며 서당식 수업을 다 하면 급수는 자연히 따라오는 거라 하신다.

나역시도 급수엔 관심이 없다 하니 랄라더러 한번 해보자 하면서 소학 책을 꺼내서 가르치기 시작하신다.

첫 소절이 天地之間 이었는데 랄라가 천지는 알고, 선생님이 다음 글자를 가르키면서 "이거는 모르지?" 하니 랄라가 "나 알아요~" 한다.

"그래? 한번 말해볼래?" 하니 "어조사 지요" 한다.

옆에 있던 내가 다 놀랐다..

대체 어디서 그런걸 다 배운 거냐..

하여간 그렇게 해서 네 소절을 해주는데 모르는 글자가 여섯글자?

오직유(唯), 가장 최(最), 나 오(吾), 할 위(爲)등이였다.

그런데뜻풀이도 같이 하는데 역시 그건 랄라에게 어려운 부분인거 같다.

완전히 서당과 같은 식으로 가르쳐서 말씨 자체도 흔히 쓰지 않는 말뜻에, 고어체로 하니 상당히 힘들게 따라가는 듯 싶다.

그렇게 수업을 끝낸 시간이 10시다.

적어도 한시간 반 이상을 붙들고 가르치신 것이다.

그 시간동안 랄라는 온몸을 비틀고, 난리가 아니었다. ㅋㅋㅋ

수업을 마치시면서 랄라에게는 "선생님은 네가 조금 더 자란 다음에 왔으면 좋겠다. 네가 배우고 싶으면 엄마, 아빠께 다니고 싶다고 말하고, 하기 싫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 이책은 너에게 선물로 주마" 하며 소학책을 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조금 더 자라고 오면 좋겠는데 만일 배우고 싶다고 하면 받아주시겠다 하신다.

하지만 선생님도 우려하시는 것은 괜히 랄라에게서 한자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릴 수도 있을거라는 것..

그리고 나에게는 엄마가 소학을 배워서 가르칠 수도 있다고 하신다.

윽...

랄라때문에 내가 소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

그렇게 하고 할머니 집으로 가면서 랄라에게 물어보았다.

서당에 다니고 싶냐고..그러자 가고 싶단다.

엄마는 네가 여덟살이 되어서 가면 좋겠다고 하니 "내년이면 일곱살인데 여덟살이 되려면 너무 오래 있어야 하잖아!" 한다.

수업시간에 꽤 애를 먹어서 안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가고 싶다고 하는거 보니 정말 좋아하긴 하는건가..--;;;

서당을 가보고 나니 내가 어떻게 뒷받침을 해줘야 할지 앞으로의 계획이 세워졌다.

차라리 한자를 어떻게 가르칠까 라는 고민이었다면 시중의 책을 사다가 가르쳤을 거다.

하지만 내가 고민한 것은 어떻게 가르칠까가 아니라 어떻게 뒷받침해줘야 하는가 였는데 그런 고민을 해결해 줄 책도, 선생님도 없었던 거다.

이제 내가 해줘야 할 것이 분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한자는 한글자 한글자의 뜻만 아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구절의 의미를 풀이하는 것에서 완성이 되는 것이지.

허나 한자를 모른다면 뜻풀이도 어려운 법.

일단 집에 있는 책들의 한자들을 빼먹지 않고 다 익히도록 체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했던 방식으로, 포스트 잇에 한자들을 써서 베란다 창에 붙여 주고,아는 글자들을 옮기도록 하면 될거 같다.

랄라야 포스트잇이 붙어 있기만 해도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니까 붙여 놓기만 하면 되는거다.

그렇게 해서 어린이 첫 그림한자 사전 1,2권을 다 체크해주고,

그다음엔 선생님에게서 받은 소학 책의 글자들을 다 체크하고,

그다음은 천자문을 해줘야겠다.

그렇게 해서 천자문을 다 떼거나,

소학의 뜻풀이를 시도해 봐서 소학을 다떼거나

둘중의 한가지를 완료했을때 서당에 보내야할 듯 하다.

랄라더러는 "선생님이 선물로 주신 소학책을 다 공부하면 그때 서당에 가도록 하자" 하고 말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다 할 수 있을 거란나. --;

상주 할아버지댁에 가서 랄라의 얘기를 해드렸더니 할아버지께서 엄청 기뻐하신다.

그리고는 집에 있는 고서들을 다 꺼내오셔서는 랄라에게 보여주시면서 "네가 이렇게 한자에 관심이 있다니 참 고맙다~ 내가 이책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몰라서 잃어버린 것도 많고, 무슨 책인지도 모르는데 네가 한자를 익혀서 보면 참 좋겠다. 나중에 집에 가지고 가라" 하신다.

참으로 특이하게도 랄라는 닳고 닳아서 너덜너덜 해진 그 책들을 보고 하는 말이 "엄마, 진짜 멋지다.." 하는게 아닌가.

내참.. 신기한 녀석.

랄라더러 이책은 지금은 가지고 가지 말고, 내년에 이사를 하면 가지고 가자 했다.

어차피 이사하면서 책을 잃거나 훼손 시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랄라는 얼른 가지고 가서 보고 싶은 눈치다.

그 빽빽한 책을 들여다 보며 아는 글자들을 찾아내니 보면 볼수록 신기한 녀석이다..

그 선생님도 참 대단하시다.

그래도 두시간동안이나 열성을 가지고 가르치는 분이 어디 있으며,

그렇게 공을 들여서 책을 들려 그냥 돌려보내시는 분이 어디 있을가.

어쨌거나 당장은 그 서당의 선생님을 보게 되지는 않겠지만,

랄라가 한자에 대한 관심이 지속된다면 꽤 좋은 스승님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그림한자 사전 2편의 한자들, 절반가량을 포스트잇에 써서 창문 한가득 붙여 두었다.

모르는 글자는 남겨 놓고 창문에 옮겨 놓았으니 지나가다 보면 자기가 옮겨 놓겠지.

이제 더이상 랄라의 한자 학습으로 어떻게 해줘야 할까 하며 불안해 하지는 않을거 같다.. ^^